서울시립대 (오한나)
◎ 핵심내용 요약
일본 측 주장
① 어부들 왕래 : 17세기에 약 70여 년간 일본의 어부들이 울릉도, 독도를 왕래 했다. 이는 실효지배를 의미하는 것이다.
② 시마네현 편입 :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근대 법적으로 시마네현에 정식 편입 했다. 이를 근거로 2005년 시마네 현 의회에서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지정.
③ 샌프란시스코 조약 : 일본과 연합국 사이의 조약. 조약내용 중 일본이 포기할 한국 땅에 독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우김. (4차까지 독도 명시 but, 5차에서 일본의 로비로 사라짐)
일본 측 주장의 모순점
① 1696년 공문서 : 공문서 내용 중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되어있음. 그러므로 17세기에 어부들의 왕래가 잇어서 실효지배를 했다는 것은 거짓.
②1870년 메이지 정부 보고서: “왜 을릉도와 독도가 한국의 영토인가 조사하라”는 명령에 따른 보고서로 당시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 땅임을 스스로 인정한것임.
③ 1877년 공문서: 독도와 울릉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울릉도 가는 길에 섬이 있다고 함. 당시 일본의 해리 개념으로 적힌것을 현재의 단위로 계산해보면 독도를 나타낸 것임을 알 수있다. 또한 일본은 17세기까지 울릉도를 다케시마, 독도를 마쓰시마로 표현했다.
일본이 말하는 다케시마는 울릉도를 가르키는 명칭이였다. ( 한국 1리 = 0.4 km, 일본 1리 = 4km, 1 해리 = 1.852km, 오키섬 - 독도 간 거리 = 157km, 울릉도 - 독도 간 거리 = 90km)
◎ 소감
독도에 대해 막연히 우리 땅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체계적으로 정리된 주장과 모순점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있다면 8가지 포인트를 다 듣고 싶었지만, 시간상 3가지만 핵심적으로 알려주신점이 아쉬웠다. 또한 조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바로잡으려 자신이 먼저 반박하고 주장하는 모습이 양심적인 지식인으로서의 표본이었다. 한국인으로서는 알 수없는 일본의 문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독도 문제는 국제적연대가 중요하지만, 특히 일본의 양심있는 지식인들과 연계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호소까와 유지 교수님을 보면서 그의 노력과 열정에 감동 받았다. 그의 독도에 대한열정이 스스럼없이 ‘우리’를 만들어 냈다.
#강의평가서
고려대학교 (장남수)
우선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의 독도 언급이라는 점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시종일관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보시는 교수님의 강의에서 소속된 국가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의 논리는 분명하고 철저하게 근거에 기반한 것이었기에 충분히 공감할 만 했다.
독도 분쟁과 관련하여 가장 빈약한 논리의 체계가 명확하게 제시되었다고 본다. 사실 그만큼의 본인의 무지함도 전제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과 비교해 한국의 국민들은 쉽게 흥분하고 독도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 단순히 학자로서의 사명감으로서 그가 독도문제를 다루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한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역사적 소명을 가지고 잘못된 방향으로 치닫는 자신의 국가를 진심으로 고민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한 명의 선구자와 같이 자라나는 다음세대에게 정직한 민족애를 보여주고자 이와 같이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국위주의 국가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세계적 추세에서 저와 같은 논리를 펼치는 것은 단순히 정의감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의 강의에서 가장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전체적으로 강의는 요약적으로 독도문제를 짚어보는데 그 목적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충분하지 않았던 시간 때문에 진행은 빠르게 이루어졌고 그만큼 깊이 제시된 것들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사실 이 강의를 들었던 대부분의 이들이 많은 부분들에서 생소해하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깊은 사고보다는 일방적 수용에 무게를 더 둘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마치 수업시간처럼 부단히 무언가를 적고 있던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있었다. 비단 본인의 경우에 한정되는 것을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나 모르겠다. 탐방 일정에 있을 다음 강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