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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진 한일역사
끊이지 않는 독도 영유권 분쟁
현실, 비현실, 바른길, 어긋난 길
1952년 독도를 영해에 포함시킨 이승만 정권의 '평화선'
1965년 한일국교정상회담
침략만행에 대한 '사과'가 빠진 한일협정 기본조약
박정희 정권 일본의 청구권 자금 8억 달러로 훗날 '국가적' 경제발전을 이루지만
군위안부, 강제징용, 원폭피해 등 '개인피해' 청구권 포기
전관수역 40마일에서 12마일로 수정
평화선을 잃은 독도
언론을 통제한 정권
"적당한 단계에 가서 신문, 잡지 등을 통해... 평화선에는 국제법상 난점이 많다는 취지의
내용을 발표한다." - 공보방안 문서 중
그것에 일조한 언론
"우리는 무엇보다도 한일국교로 인하여 국민 간에 단합이 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한다." - 경향신문 65년 6월 21일 사설 중
30년 후 1997년 IMF 경제위기
김대중 정권 원만한 한일관계를 고려해 일본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EEZ 200해리를 인정
1999년 신어업협정
울릉도를 기점으로 EEZ를 삼아 독도를 한일간 중간수역에 포함시킴
"신어업협정은 어업에 관해서만 규정했어야 했는데 EEZ 논의에 독도를 중간수역에 넣어
200해리 시대 개념으로 일본의 논리에 빠진 격이다." - 이상면 서울대 법대 교수
2005년 '한일협정' 문서 공개
언론의 반응
"야당과 보수세력을 견제하려는 의도" - 동아일보
"일 배상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주요 재원으로 긴요하게 활용" - 문화일보
"역사적 평가는 좀더 미루는게 합당하다. 결과적으로 청구권 자금으로 경제개발에
성공한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 - 중앙일보
2006년
"일본정부가 당초 오늘로 계획했던 탐사선의 출항을 일단 보류하고 외교적 해결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러나 접전을 찾는데 실패할 경우에 독도 주변 해역 진입을 시도한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어서 긴장감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때에는 그것이 현실이냐 비현실이냐를 따지기보다는
먼저 그 일이 바른 길이냐 어긋난 길이냐를 따져서 결정하라." - 백범 김구
김구 선생은 1949년 6월 26일 암살당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