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치욕적인 한일 합방이 이뤄진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다. 1905년 고종황제를 협박해 대한제국의 재정권과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제국주의는 1910년 마침내 조정의 대신들을 감금한 후 한일 합방을 감행했다. 대한제국이 붕괴한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전 속에 대한제국을 무력화시킨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우리의 영토 독도를 무인도라 칭하고 다케시마란 이름으로 일본 시마네현에 편입한다고 공시했다.
고창근 독도수호국제연대 독도아카데미 집행위원장
그렇다면 왜 일본은 한일 합방이 되기도 전에 서둘러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했는가. 러시아와의 해전에서 독도가 지닌 전략적 가치 때문이었다. 일본은 서둘러 울릉도와 독도에 망루를 설치해 러시아 극동함대의 이동을 감시했으며 1905년 5월27일 벌어진 독도 근해 해전에서 러시아함대 니콜라이 1세 등 4척의 함대를 격침시킴으로써 동해의 해상권을 장악했다.
일본에서 독도가 차지하는 군사전략적 가치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며 북태평양으로 나가는 해상무역 루트인 독도 해상의 전략적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일본이 일본해라고 주장하는 동해의 한복판에 있는 섬 독도를 점유하면 태평양 항로의 모든 해상권을 장악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독도 해저에 깔려 있는 차세대 에너지원 천연가스 하이드레이트(natural gas hydrate)의 가치도 일본이 독도를 탐내는 요인으로 보인다.
1998년 맺은 신한일어업협정은 양국 간에 팽팽한 독도 영유권 주장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IMF 관리 체제 하에서 다급한 한국과 돈을 빌려주는 유리한 입장의 일본이 새로 맺은 어업협정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일본에 독도를 포함한 중간 수역에서의 어로행위를 보장함으로써 독도영해를 침범한 일본 선박을 추적할 권한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일본이 독도 문제에서 한국과 대등한 입장이라는 주장의 근거다. 주한 일본 대사가 우리 외교통상부에 들어와 독도가 일본령 다케시마라며 당당히 큰소리치는 근거로 보이며 독도 문제를 국제재판소에 가져 가서 따져 보자는 근거로도 작용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유비무환 전략으로 가야 한다. 하루빨리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위한 제반 인프라 구축, 전국의 초중고교생 및 대학생들에게 영토 및 주권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종합상사를 비롯한 무역상사의 해외 주재원, 유학생 집단, 해외 대학과 긴밀한 학술교류를 하는 국내 대학은 세계의 각종 출판물 등에 명기된 다케시마와 일본해 표기를 삭제하고 그 자리에 우리의 독도와 동해를 등재하는 애국적 실천운동에 팔을 걷고 나서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100년 전 치욕적인 한일 합방으로 36년간 나라 없는 국민으로 살았던 통탄의 시대를 미리 방지하는 오늘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